<사설>건강보험 파탄 위기… 총액계약제 검토해 보라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위기로 치닫는데도 보건복지부는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겠다는 원론만 되풀이할 뿐,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치료 횟수에 따라 한건, 한건 진료비를 청구하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가 의료비 상승 주범이라는 판단을 내린 지는 이미 오래다. 실무진이 검토를 거듭한 포괄수가제 또한 의사들의 반대를 이유로 제동이 걸린 상태다. 포괄수가제는 질병의 종류에 따라 미리 정해진 표준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역시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막는 대안으로는 역부족이다. 종합병원 중심으로 비보험 진료비가 크게 늘어날 개연성이 짙다. 과잉 진료를 줄일 수 있되, 질병군별 진료비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총 진료비가 평균 23.8% 늘어나는 단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마당에 복지부가 총액계약제를 마지막 카드로 차일피일 미뤄야 할 이유는 없다. 총액계약제는 지역별·요양기관별로 의사와 약사에게 지불할 보험료 총액을 매년 미리 정해놓고 그 한도 내에서 보험료를 지급하는 제도다. 홍승권 가톨릭의대 교수는 지난달 23일 일차의료연구회 세미나를 통해 “독일과 대만이 각각 1996년과 2002년 병원 부분에 총액계약제를 실시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총액계약제가 의료서비스의 질을 하향 평준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건강보험공단이 22일 주최한 ‘건강보험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토론회’에서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막을 수 있는 의료비 총액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해 10월25일 총액계약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총액계약제 도입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건강보험이 최악의 단계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건강보험 재정은 2942억원 적자가 발생했다. 올 한 해 건강보험 적자예상치 5130억원의 절반 이상을 단 한 달 새 잠식했다. 이로 인한 누적적립금은 6650억원에 불과하다. 건강보험법에 따라 연평균 15%의 국고지원마저 올해말로 종료될 예정이다. 보험료 추가 인상이 없다면 내년에는 ‘잔고 제로’ 상태를 면키 어렵다. 건강보험은 2008년 1조3667억원 흑자에서 2009년 32억원 적자로 돌아선 뒤 2010년 1조2994억원으로 적자 폭은 커졌다. 건강보험료를 지난해와 올해 각각 4.9%와 5.9% 인상해도 재정 적자를 탈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건강보험은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입이 연평균 11% 증가하는 데 비해 진료비는 13%씩 더 는다. 65세 이상 고령층이 인구의 10%에 해당하지만 여기에 지출되는 진료비가 건강보험 전체 지출액의 30%에 달하고 있다. 무상의료 등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요구가 계속되는 점도 재정의 위협 요인이다.

의사들이 요구하는 수가의 적정성 확보와 수가계약 방식 개선 쪽으로 총액계약제 도입을 검토하기 바란다. 국민 10명 중 9명꼴로 이용하는 건강보험을 살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복지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